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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05 인간 문명 건축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11.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533
내용

인간문명건축


김 석 환(울건축 대표)


변하는 것과 변화되지 않는 것

귀틀집건축은 인간이 자연 기후에 대응해 안락한 생존 조건을 갖추기 위한 의지의 산물이다. 그것에 담긴 의지는 인간이 문명을 이룩해온 맥락과 같다. 그리고 그 양상은 그에 작용한 기술적 요인이나 문화적 양상에 의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천해 왔다. 사람들의 기호와 인식 변화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문화기류 등 사회 환경은 마치 자연환경처럼 유기적으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쳐 왔다. 현재도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요인들이 형성되고 있다. 컴퓨터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이전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던 사회 콘텐츠가 무력화되고 새롭게 등장한 도구를 이용한 방식으로 대체되어 간다.
무지개가 뜬 도심 풍경문명은 편리함으로 인식되지만 그 의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구속적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구의 쓰임이 보편화되면 그것은 사회 공통의 이기로써 사회에 적용되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그 새로운 기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종국에는 인간이 도구에 지배당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회적 변화추세에 맞춰 늘 새로움이란 의미를 추구하고자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건축 또한 새로운 발명품을 개발하듯 시대상에 맞춰 개조하려 하지만 건축의 본질에 비춰볼 때 그런 것들이 진정으로 정당할지 의문이다. 나는 건축의 덕목이 변화할 수 없는 의미에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이 소중한 것은 삶의 기본 조건이며 휴머니즘이 추구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능주의는 인간의 존재성을 일에 있다고 여기고 건축을 그에 적합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건축의 본질은 인간의 원초적 존재성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원시인을 떠올리면서 미개인이라는 표현도 쓰지만, 존재 양상이 다를 뿐 인간의 속성상의 차이는 없을 것이다. 문명적 누림에 의해 인간의 우월적 존재의식을 낳게 하는 대부분의 지식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나 인간의 존엄성 실현과 관계가 없는, 단지 의미가 확장 되어온 사회에 적응하고 소통되기 위해 필요한, 인간이 현실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건축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성에 알맞은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지만, 현재 상황에 인간의 모든 의지가 구속된 결과를 낳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시대성에 적합하게 변화되는 것이 아니며 본연의 존재성의 바탕위에서 선택한 현실의 문제를 수행하는 장으로서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건축은 문명적 함몰로부터 인간의 본성을 지켜가는 원초적 보루로서의 성질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와 건축

수조에 떨어뜨린 잉크방울도시는 어느 지역에 집단적으로 건축된 환경안에 살아가는 인간 존재 양상의 실체이며, 도시에 대한 고려는 그 상황에서 그 안의 모든 건물이 고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된 각종 도시 부대시설의 적정성과 환경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 도시 기능이 원활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건축적인 것만은 아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이 총 망라되는 복잡한 의미를 다루어야 한다.
도시란 현재에도 무엇인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과 활동에 의해 계속해서 변모해 가는 현상의 총체이며, 완결된 실체의 모습을 가질 수 없다. 도시 용량에 따른 교통시설 등의 수요 예측 등, 어느 한 부분이 잘못되거나 하면 마치 도시 전체가 동맥 경화증을 앓는 환자처럼 도시 문제가 야기된다. 실제로 많은 도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가끔 사람들이 도시 문제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희망을 갖고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대다수가 도시를 떠나려 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도시 지향적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 양상은 대세의 도도한 흐름에 휩쓸려가는 것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철거 전 31 고가도로도시 문명은 잉크 방울이 떨어뜨려진 컵 안의 물과 같다. 그 물은 그 자체로서는 원래의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며 인위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도시 문명은 그처럼 삶의 양상이 자연과의 연관성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인위에 의존해 살게 됨을 의미한다. 인간이 스스로 환경악화의 결과를 초래하면서 그 이기를 누리는 삶의 선택적 양상이라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자연 기후와의 직접적 대응으로부터 이루어진 건축적 의미도 설비 장치의 비중이 커지면서 그 내용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현대 도시는 석유자원의 고갈을 예상하면서도 교통, 난방장치 등이 그에 의존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석유가 고갈되면 그 모든 시설들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도시에 대해 모든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그 바탕위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은 오류위에 논리를 구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수몰 전 탐진강 도시 건축이 기능을 원활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성격, 가로의 구조, 교통량 이웃 건물의 용도와 규모 등 현재의 도시상황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도시 내 건축은 지정학적 위치와 도시환경, 기반시설의 충족, 교통, 경관요소 등에 의해 건축물의 가치성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도시에 놓여지는 건물이 어떻게 쓰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인지 검토하여 밀접한 관계를 갖게 한다.
오늘날 건축은 그러한 이유로 도시 요인이 건축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건축이 도시 질서에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건축가들도 건축 자체의 진솔한 사색보다 도시와의 관계를 분석하는 일에 몰입하는 경향을 띠어가고 있다. 그리고 대세에 합치되는 건축적 양상이 이루어지며 건축이 도시에 함몰될 위기에 처해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종국에 가서 건축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고 거대한 하나의 도시 조직으로 통합된 의미의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도시적 공공성이 중시되면서 인간성이 보호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노출되고 있다. 건축은 도시적 사회성 이전의 본질을 유지해야 한다. 건축은 원천적으로 인간을 위해 자연과의 원초적 대응 상태로 존재되는 것이며, 도시 상황 안에서도 기후조건에의 대응, 일과 휴식, 수면, 안정을 위한 심리적 측면의 고려, 가족생활의 영위등 인간을 위해 필요한 고유 의미를 지니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열악해진 도시 상황에서는 도시와의 관계성을 쫒아갈수록 건축도 척박해지기 쉽다. 건축의 정체성을 보존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건축과 도시 접점 사이에 그 영역이 지켜질 수 있는 완충지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건축은 도시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갖지만, 도시의 하부 구조가 아닌 문명의 범람속에 존재하는 오아시스와 같은 의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는 건축 같은 완결된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도시 만드는 것이 건축가가 건축을 만드는 것보다 더 관심 갖을 일이 아니다. 건축이 추구할 가치는 건축 그 자체이다. 건축가가 도시에 대해 건강한 견해를 갖을 수 있지만, 평소 도시에 온당한 견해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한 사람의 생각한 바가 도시에 전체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일지라도 도시에 실제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무리수가 따르고, 그 본래의 선한 의지보다 잘못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최상의 정신적 가치들은 물질을 수반하지 않는다. 도시의 건축은 도시 구조와 밀접한 연관을 갖지만 도시의 구성 요소가 아닌, 도시 자체로부터 독립되어 인간성이 보호되는 성채여야 한다. 건축의 최후 보루는 인간이어야 한다.

건축의 감각
귀틀집 단면도
위대한 건축은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그 힘을 발하게 된다. 그런 건물을 보고 감동하여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은 건축은 시대와 양식을 불문하고 뛰어난 균형을 갖추고 있는 것들이다. 병산서원, 파르테논과 판테온 신전, 팔라디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아름답다고 잘라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건물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찾아가고 있다.
건축적 가치는 쓰임의 가치보다 건축다움의 힘이 인간 존재성에 미치는 힘에 있다. 규모의 충족으로서가 아닌 감동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건축의 유용성이다. 건축의 감각은 형태 또는 공간만으로 정확히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총체적 상황에 대한 인간의 심리와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건축은 예술 가운데 특이하게 그 본질적 힘이 우주의 일부를 점하는 존재성에 있다. 그리고 건축에 표상되는 숭고함과 경이로움은 그 힘이 수반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의 감각은 전적으로 인간 작업의 결과만이 아니며, 어떤 동기로부터 유발된 지음의 행위에 우주 섭리가 함양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건축가는 솜씨를 부리려 하기에 앞서 겸허함 마음가짐으로 자연의 섭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건축에 관계되는 중력 같은 우주 섭리와 연관속에 함양되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건축적 존재다움의 감각은 지음 수단에 의해 표출되는 사물의 질서로부터 표출된다. 그 질서의 의미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건축적 추구 가치는 그 존재다움을 지니게 하는데 있다. 인간은 새로움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지만 건축적 가치는 새로움보다 진실한 감각에 있다. 건축사의 다양한 양식의 등장에는 새로움을 쫒는 인간의 심리도 작용하였을 것이나, 인류 역사상 등장한 가장 위대한 건축은 그러한 장식적 면모가 아니라 단순하고 완결된 균형을 갖춘 건물이다. 기본적으로 건축의 좋은 감각은 바른 자태의 표상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의 가치를 쓰임에 두는 것은 근대건축이 지향하는 시대정신이만, 그것은 그 이념이 지닌 특징을 나타내는 말일 뿐 건축의 근본적인 가치는 시대를 초월해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근대 건축이 표방하는 기능주의에 대해 쓰임의 유용성만을 강조한 말처럼 이해하기 쉽지만, 근대 건축의 주창자인 르 꼬르뷔제의 건축은 작품의 힘으로써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병산서원 만대루예술창작 행위로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그 자태와 공간으로부터 형성되는 감성적 변화에 주목하여 그 효과에 대한 면밀히 추구하는 일이다. 그 중 이미지로 나타나는 형상적 의미에 비해 건축에서의 공간의 감각은 좀더 특별하고 신비스러움을 유발하는 감각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의 부피외 빛에 의해 표출되는 공간의 감성적 효과가 인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의미이다. 그런데 본질적 추구로 이루어진 공간은 흔히 접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건축에서 공간을 규모를 헤아리는 의미로 요구조건을 확보하는 생각에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이 사회속에 바르게 자리잡게 되기 위해서는 삶 가운데 건축으로부터 발현되는 정서적 충족감이 중요한 것이며, 그 가치 실현을 위해 경주되는 노력 또한 소중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야 한다. 건축은 문학이나 음악을 듣고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명 인간의 삶에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사회 전체가 인식하게 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건축적 작품성 또한 철저히 그 본질적 추구에서 성취될 수 있다. 르 꼬르뷔제가 설계한 롱샹교회로부터 성취된 힘은 공간의 감각에 따른 정서이다. 그것은 한 건축가가 공간의 크기와 양상, 빛의 취급으로부터 전해오는 예배 공간으로서의 신성한 느낌이 인간과 반향하는 공간의 효과를 가장 예민하게 고려하여 창작한 건축예술이다. 그를 위해 제대의 위치와 예배석의 공간적 거리 빛의 세기와 방향, 창의 크기와 위치 등이 섬세하게 취급되어 있다.
예술적 개성은 감각적인 데 있고 작가마다 색깔은 다를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작가의 작풍이 형성된다. 그러한 다양성의 표출은 감상자라 할 수 있는 대중에게는 문화적 다양성과 풍요를 경험케 하여 즐거운 일이다.
과거 시대의 건축에는 석재나 나무 등 건축 재료로부터 함양된 물성의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철과 유리 사용이 늘어가는 추세의 현대 건축은 그 사용 기술이 발달할수록 건조한 건축이 되어가고 있다. 그로써 존재다움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건축에 수반되는 기술 재료등에 의해 많은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지만, 건축다움의 의미를 발하기 위해서는 본래 참다움의 힘을 지녀야 할 것이다. 건축은 현재 행위의 대응만을 위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영위하는 인간의 의식적 변화와 같은 본성에 관계된 점에서도 충족되어야 한다. 건축이 마치 의상을 선택하듯 기호를 반영하여 주문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축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과 나의 건축적 성격

나는 뛰어난 개념 제시나 설계도 작성만을 두고 건축적 능력이 확인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은 실현으로 나타나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완결된 의미이다.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멋있게 보여지는 안을 작성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예술가의 능력이 있다고 예기할 것이다. 그러나 도면으로 그려진 안은 예술적 단계로 실현되고 검중된 것이 아니다. 작가란 지식을 갖추는 것만이 아니며 작업이 힘을 발할 수 있게 안목이 수련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을 사색을 통해 알려 노력한다. 사색은 본래성의 의미와 바른 양상을 떠올리고 음미하는 과정이며 진정으로 참답고 확연한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나는 건축에서도 사색을 통해 건축의 본질적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떠올린다. 그리고 스스로 정리된 견해로 건축하려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선인들이 이룩한 업적으로부터의 교훈이 작용한 점도 많다.
건축에 입문할 무렵 르 꼬르뷔제의 작품집을 대했을 때 그의 생각과 작품세계가 순간적으로 교감되었다. 그리고 건축가로서의 나의 인생 방향이 확고히 정해지게 되었다. 나는 그의 작품을 직접 접하며 그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그의 생애와 건축을 답사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르 꼬르뷔제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람들은 근대 건축의 합리주의에 대해 망각해 오고 있다. 그 의미를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효율성의 추구로 가볍게 인식되기도 하지만 르 꼬르뷔제 주창한 근대 건축 정신에는 고대 건축으로부터 교훈을 얻은 건축적 질서의 힘과 새로운 표현형식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이외에는 루이스 칸, 그리고 나의 성향과 유사하게 여긴 루이스 바라간, 깜뽀빠에자, 알바로 시자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근대 건축 이후 기능주의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 지역주의, 하이테크 건축, 해제주의, 미니멀리즘 같은 여러 사조가 등장했다. 그 사조들이 기능주의에 대한 편협한 의미 적용으로 나타난 결과에 대한 실망으로부터 제시된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각각에 본연의 사고로부터 표방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건축의 원형적 아름다움과 가치를 설파한 루이스 칸의 업적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해온 작업들을 되돌아보면 기하학적 매스의 구성, 질서와 자율성이라는 나름의 건축적 성향이 읽혀진다. 그것은 순수함을 좋아하는 타고난 성향에다, 르 꼬르뷔제 건축의 교감을 통해 확고해졌다. 그런 배경에서 순수성, 검박함, 능률성, 단순미 등을 갖추고 있는 근대 건축적 어휘가 자연스럽게 나의 건축적 인상이 되어졌다고 본다. 합리주의에 입각한 순수성과 자율성에 바탕한 근대 건축의 자유로운 표현은 근대 이전 사람들이 건축에 대해 갖고 있던 양식적 견고함에 비춰볼 때 엄청난 인식적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의 바탕에는 기하학적 윤곽의 질서가 깔려 있으며 그 같은 상반된 요소들이 긴장된 균형 관계를 이루며 미학적 표출로 나타나게 하려 했다.
전통건축에 적용된 동양사상에는 인간의 모든 행위들을 우주 섭리에 따르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인간이 우주 주체로서가 아닌 그 구성 인자의 하나로써 타 존재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겸허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했다. 전통 건축의 감각에는 원초적 지음의 질서로부터 전해 오는 감각이 있다. 그리고 바람결,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 조망 등 건축에서 느껴지는 자연현상의 힘이 있다. 그 결과 우주와 건축이 하나의 온전한 관계속에 소통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이 현대에 전통건축으로부터 깨달은 교훈이다. 근대 건축 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던 나는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된 이후로 인간의 문명과 도시에 대한 근본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덤덤한 건축을 지향하고자 한다. 검박할수록, 덤덤할수록, 단순할수록 삶이 맑고 건강하게 될 수 으며, 건축을 치장하고 손질을 많이 가할수록 삶의 분위기가 칙칙해진다고 생각한다. 소박한 건축, 담담한 건축 기본적인 바른 자태로써 발휘되는 감각을 중시한다.
예술가로서 건축가의 작업은 감성적인데 있다. 건축과정에서 재료, 공간의 크기, 빛 등 수 많은 요인을 감안할 때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작가의 감각이 작용된다. 바른 질서, 삶과의 연관성, 필연적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건축의 가치는 형태만의 것도 아니고 공간만의 것도 아닌, 건축의 가치는 행위와 관련되고 결국은 인간 심리와 관계된다.
나는 나 스스로의 작업을 통해 근대 건축의 감각을 스스로 터득하려는 기간을 갖어 왔다. 백색시대라 할 일산 신도시 주택, 대전 둔산동 주택, 효창동 주택, 곤지암 주택 등 단순한 매스로 된 몇 개의 주택들을 지으며 내 안에 근대 건축적 감각을 경험으로 지니게 되었다. 그 외 대전 탄방동 성당, 제주 중문 관광단지 전시관 및 관광 편의시설, 신림동 교회 계획 등을 만들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 후 평소의 건축적 바탕에 한국 전통건축으로부터 경험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일산 내곡동 주택, 일산 장항동 주택, 방배동 주택, 봉동 주택 계획, 남이섬 문학집필실 등과 청풍헌 등을 작업하였다. 그 시기 근대 건축에 대한 생각과 우리 건축으로부터 느낀 감각이 어우러져 나의 건축적 특성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내심의 기대를 갖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어떤 풍을 의식하며 건축하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 안에서 의미가 감각적으로 발현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건축에는 이데아가 있고, 건축 작업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그 이데아를 충족시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0512건축역사학회지44호 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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