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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05 수상작다시보기광주광역시청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11.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647
내용

2004 건축문화대상 수상작 되돌아보기
2005. 3.
울건축 김석환
글머리에
광주광역시청사가 2004 한국건축문화 대상을 받았다. 광주광역시는 시청사의 완공으로 광주의 발전상을 과시할 수 있게 된데다 수상으로 건물의 작품성까지 인정받게 되어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그런데 그러한 성취를 안겨 준 시청사의 건립 의지는 1990년대 초 있은 광주 신도심 건설 계획 때부터 나타나 있었다. 당시 600만평 규모의 신도시 건설을 위한 도시계획을 현상설계에 부쳐 당선안을 뽑았었는데, 필자도 그 당선안 가로 위에 가상의 건물을 채워 넣으며 꿈과 같은 일로 여겼었다. 그처럼 안을 결정하고 난 얼마 후부터 도로 등 기반 시설을 닦아 나오다, 새 청사 건립을 위해 1996년 현상설계에 부쳐졌고 이번에 완공을 본 것이다.
새로 지어질 건축물의 현상설계에 의한 선정 방법은 주어진 조건으로부터 모든 가능성을 확인하고 참가안 중 최선의 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참여한 건축가의 의욕을 고취하여 뛰어난 작품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건축의 비전을 추구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호주의 시드니 하우스, 프랑스의 라데팡스에 세워진 Grand -Arche 등은 현상설계를 통해 지어져 세계적 명물이 된 사례이다. 또 비록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르 꼬르뷔제의 국제 연맹 현상설계안은 비록 실현되지 않았지만 근대 건축의 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수상작의 작품적 성격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면 그 과정에 있었던 이야기는 기억 너머로 지나가고 하나의 작품으로써 적나라하게 서 있게 된다. 그 실체를 통해 작가가 다루고 있는 건축적 지향과 그 성취 여부를 생각하게 되고, 건축의 보편적 의미를 토대로 그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시대 건축가 비트로비우스는 미 구조, 기능을 건축의 3대 요소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의 건축사에서 건축의 가치를 판정하는 잣대로 자리 매김 되어 왔다. 건축적 의미를 몇가지 기준으로 다 담아 낼 수 없겠지만 여전히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근대건축 이전의 건축 양식을 대상으로 설명된 것이었다.
광주광역시청서는 외부 형태와 로비 공간에서 모더니즘에 충실한 감각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로부터 르 꼬르뷔제의 건축 어휘와 연관된 계보적 흐름도 의식될 수 있다. 실제로 설계자 가운데는 르 꼬르뷔제 문하생이었던 앙리 시리아니의 제자도 있다. 근대 건축의 개척자인 르 꼬르뷔제는 근대 건축 의의를 자율성과 순수성에 두며 양식성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근대 건축에 미학적 가치를 띠게 할 방법의 실마리를 당시 새롭게 등장한 추상미술에서 찾았다. 그는 오장판과 함께 순수주의 화가로도 활동했는데, 그의 회화가 갖는 미학적 특질은 순수 기하학적 형태의 구성에 이미지의 중첩에 의한 공간의 표현이었다. 그는 자신의 회화에서 실험한 미학을 건축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는 건축에 등장되는 요소들을 자율적으로 취급하여, 자신의 회화에서 구성 요소를 다루듯 구성에 의한 미적 감각을 획득하고자 했다. 건축은 평면으로 된 그림과 달리 빛과 사물이 입체로 이루어진 감각과 공간의 상호 관입, 건축적 산책로등 유동하고 변화하는 요소에 따른 순환성과 그 정서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로써 근대건축은 비트로우스가 말한 요소외의 다른 가치를 형성하고자 했다. 그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외관과 1층 로비 공간에서는 작가의 생각과 의지가 더 뚜렷이 표출되고 있다.

작가 의지의 표출
광주광역시청사는 이전의 관공서 건축의 엄격한 이미지와 다른 활달한 모습을 띠고 있다. 현상설계 당시의 안을 전시하면서 만든 브로숴를 보면 이미지 면에서 다른 안과 쉽게 비교가 된다. 큰 규모임에도 외관에서 건축에 대한 확신으로 다루어 놓은 힘이 느껴진다. 건축가의 감각과 언어로 충실히 이룩된 마스터빌더를 꿈꾸고 있을 듯 설계자에게 익숙할 듯한 어휘를 마음껏 구사하여 작품성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점은 현상설계의 긍정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도시계획으로 지정된 거칠 것 없이 너르고 반듯한 부지위에, 이전 청사의 경직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청사를 마련하겠다는 발주자의 의지와 설계자의 의지가 일치된 상태로 힘이 발휘된 결과로도 느껴진다. 건물 내부에서도 그러한 감각이 눈에 띤다. 로비 부분은 행정동, 시민홀, 의회동의 로비가 연결되어 있어서 길고 볼륨이 큰 개방 공간이 형성되어 있는데, 자유롭고 감각적 공간 구성이 느껴진다. 그 공간은 매스가 분절되는 곳이나 셑백된 충의 차이 부분, 측면 등 빛이 유입될 수 있는 곳에 창을 내어 최대한 자연광을 활용했다. 그 빛은 높은 곳으로부터 깊게 들어와 직접 비추기도 하고 매스와 구조물을 통과하며 걸러지기도 한다. 그로써 밝고 어두운 층위를 이루며 어두운 곳에서 밝은 부분으로 나아갈 때 기분이 고조됨을 느낄 수도 있다. 또 시종일관 유동하며 내부의 장소마다 달라진 공간 볼륨 및 위치가 다른 빛의 유입으로 다른 깊이와 밝기로 읽혀지는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 공중에 매달린 꼴로 구성되어 있는 대강당 하부가 로비에 노출되어 천정면에 변화된 조형 어휘로 활용하고 있다. 로비 앞, 의회동 2층 홀, 그리고 시장실 홀 벽에 적절한 현대 미술작품들이 놓여 있다. 그것은 마치 입체 미술작품을 감상할때와 같은 흥미를 유발한다.

성과 뒤의 아쉽게 느껴지는 점
현상설계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들로부터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현성설계의 문제점은, 건축행위의 본질보다 그 자체를 의식하는 가운데 진행되는데 따른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행 결과로 지어진 건물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해 왔었던 점은 차치하고, 공모안 선정 구조에 기인하는 일반적인 현상을 놓고 볼 때 현상설계는 디자인 과잉을 불러오기 쉽게 되어 있다. 즉 무난함은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건축 설계란 실제 지어질 것을 도면등 표현수단을 통해 언어처럼 전달하여 그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그런데 심사와 제출된 응모안이 심사위원들에게 밋밋해 보여서는 뽑히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형성이나 외부공간 계획이 쉽게 눈에 띠게 하고 자연의 숲 속에 지어질 경우에도 과도한 조경 표현 등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표현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다보니 그를 위한 비용도 더 많이 지출되게 되어 참가 자체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심사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이해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듯 하다. 그러나 계획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그려진 것은 그냥 설명 자료일 뿐이다. 표현 과잉보다 담담하고 적은 표현일지라도 꼽꼽히 읽어내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지성적인 일일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그러한 의식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도 있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배를 상징하는데, 광주광역시가 힘차게 전진하는 이미지를 갖게 한 것이다. 하지만 설명을 듣기 전에는 쉽게 그 의미가 인식되기 어려울 것 같다. 의회동의 역삼각형 형태가 방향성과 역동성을 갖게 하는데, 전면에 무지개를 상징하는 아치형 조형물과 함께 수직 수평선의 직선적인 바탕에 다양한 조형 요소가 조화되게 하려는 의도가 더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의회동은 조형상의 가치를 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각으로 항해하는 방향성을 띠는 조형은 의회 공간과 부합되고 있지 않다.
건축가가 건축을 한다는 것은 주어진 조건을 건축의 본질에 입각한 건축의 질이 생성되도록 가다듬는 일이다. 그런데 프로그람상의 용적을 조합하는 행위 자체로써 의도하지 않아도 형태가 생기고 엄청난 결과가 생성된다. 그리고 그 자체로써 때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버겁게 다가온다. 그래서 건축은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대중은 그것을 건축적 힘으로 혼동할 때가 있다. 건축가는 생각을 도면으로 나타낸다. 그 도면은 연주를 기다리는 악보와 같아서 연주하는 사람마다 다르 듯 상상과 재현 사이에 늘 갭이 생길 수 있다. 거대한 규모로 생성되는 건축은 도예가가 도자기를 만들때처럼 완벽한 인지하에 취급되기 어렵다. 상상으로 판단할 부분이 많은데 지어지기 전까지는 건축가 자신도 검증할 수 없다. 그 도면과 실제에 대한 것의 스케일 문제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자 평생 시행착오를 계속해 가는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건축가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각각이 애써 나갈 것이다. 지어진 후에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 조건의 인식은 거의 하지 못한다. 결국 건물을 이루는 모든 부분은 건축가의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실현된 상태로 사람들 앞에 놓여져 그에 대한 갖가지 감상을 듣게 된다.
로비 공간에서는 건축가의 뛰어난 감각이 느껴지지만 공간 스케일에서 과도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현재의 볼륨은 사람들에게 적정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보다 큰 볼륨으로부터 느껴오는 개방감의 효과가 더 클 것 같다. 즐겨 쓰는 건축 어휘를 감상하는 장소가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당초 계획 의도대로 진정한 시민 공간이 되려면 분명한 쓰임의 목적을 갖고 그에 알맞은 적정 스케일의 공간 계획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주로 전시와 이벤트성 행사를 벌일 때가 많다. 그리고 로비 내부에서 어두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평면구조에서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갈리고 있는 건물 구조에서 비롯된다. 물론 인공 조명 장치가 되어 있긴 하지만 자연채광 부분의 감각과 다르기 때문에 자연광의 효과를 살린 공간의 전체 감각으로 볼 때 아쉽게 느껴진다.
그런데 건축가의 작품이 실현과정에서 돌출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일이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건축가가 아닌 사람의 터치가 가해지는 경우이다. 건축가는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건축가가 발휘한 작품을 이루어낸 감각을 취사 선택하듯 반영하기도 하고 그에 반하게 하기도 했다. 여기서 건축가는 모든 공간을 균질하게 처리했다. 그런데 그 같은 중요한 의도를 깨뜨리고 일부 실과 출입문 부분 등을 꾸며 놓았다.
외부 공간에서도 그러한 요소가 있다. 까만 돌로 소반형태로 만든 분수 안에 빈 마당 공간을 두고 무지개 아치를 넘어 건너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벽처럼 둘러쳐서 공간적 단절을 낳고 까만 구조물이 되어 전체적인 인상을 어둡게 한다. 그것은 외부 광장에 대한 설계 제안서에는 민주 광장, 오픈 광장 개념이 적용되어 있는데, 실현 과정에서 변경된 것이지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작품을 통해 생각하는 시대성의 의미
이 작품에서 건축가는 어떤 확고한 주관이 있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나는 모더니즘이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근대건축의 힘은 기술적 발달에 힘입어 형식성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른 의미의 확장을 불러온 것과 정신성 측면의 순수성의 가치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정한 의미가 올바르게 인식되어 왔는지 또 대중이 그것을 선호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근대 정신은 물량 위주의 대량생산과 혼동되고 합리성은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의해 저급한 건축을 파생케 했다.
또 그 건축적 방법론이 과연 본질에 입각한 궁극적인 가치 추구와 일치하는 것인가 하는 점도 여전히 의문일 수 있다. 르 꼬르뷔제는 자율성을 근대건축의 덕목으로 삼고 그것을 미학적으로 보편화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근대 건축의 특질로 삼은 가변성은 고전 건축이 지녀 왔던 견고한 가치를 잃게 되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또 현대미술에 입각한 근대 건축의 미학적 토대를 마련하려 했지만 그것은 건축의 본질로부터 회화적 이미지로 변용될 염려도 안고 있다고 본다. 원시 건축은 지음 방식의 드러남으로부터 생성되는 건축다움의 힘이 있다. 그런데 변화성은 건축의 지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견고함, 영원함, 확고함 같은 의미를 약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근대 건축에서 최상의 감각으로 성취된 롱샹이나 라 뚜우렛뜨 수도원의 예배당도 그런점에서는 근본적인 회의에 직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건물과 관련지어 예기할 수 있는 것은 근대건축적 가치의 현재적 유효성이다. 세상은 합리적인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으며, 참다움이라든가 진실이라든가 하는 것은 역사 전체의 시각에서 다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현대 건축은 근대 건축의 순수한 덕목을 벗어나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유행의 변화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환경이 변하고 대중의 감성이 그러한 가치로부터 거리가 생겨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사물이 캔바스와 공간에 등장하여 보편적 미감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러한 것을 이전의 관념으로 추와 미를 구분해 설명하기가 곤란해졌다. 그리고 미에 관해 새롭게 자리잡은 미의식이 현실 작품에 적용되고 있다. 현대에 건축은 그러한 영향이 반영되어 새로운 경향이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건축을 장르가 다른 순수 예술처럼 다루려는 듯이 보일때도 있다. 램콜하스는 현대 건축의 그러한 현상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 비춰지고 있다. 그는 건축적 장르나 형식, 기술, 그 모두로부터 자유를 추구하고자 한다.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대중 인식이 공고해지면 순수한 가치에 배척된다 할지라도 대중적 선호에 의해 더 타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즉 그것이 현실적 지향 가치가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시대 상황은 그러한 시점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모더니즘이 표출된 광주 시청사가 반가우면서도 다시 우리 앞에 놓여진 시대상황과 건축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점이다.
근대 건축의 순수 감각적 추구와 본질적 환원 의지로 표출된 성과는 확실히 심오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합리성으로부터 생성되는 순수함의 감각적 극치는 선의 경지와 유사할 수 있다. 그것은 형체가 아닌 사물 본연에서 찾을 수 있는 정신적인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한 점들이 현실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채 시대가 변하는 느낌도 든다.
현상설계의 성과에 대해서 회의 섞인 시각도 많은 것 같으나 광주광역시청사는 수상으로서 뿐 아니라 실제 작품성 면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는 듯 하다. 현상설계로 지어진 작품 가운데 드물게 건축가의 뛰어난 감각이 제대로 반영된 성과로 여길 만한 점들을 느낄 수 있다. 현상설계 제출안과 지어진 결과를 비교해 볼 때 형태와 공간구성이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설계자가 면밀히 다듬어 제출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은 이상적인 안을 발굴해 좋은 작품을 짓고자 하는 현상설계 본래의 긍적적인 결과를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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