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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목

05.01 김개천과의 대담

작성자
김석환
작성일
2009.11.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693
내용

04. 12. 10 현장 답사
오후 250430
대담 1217일 오전 11시 국민대학교 조형학부 220-1

김석환 : 만해마을을 이 곳에 짓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건축주가 특별히 요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김개천 : 큰 스님(오현)께서 제게 의뢰를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백담사 내에 전시관이 있지만 백담사 밖에서 만해의 문학적 업적만을 부각시킨 기념관을 지었으면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사실은 제게 일을 의뢰하기 전 다른 곳에 의뢰하여 설계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 계획안은 단일 건물로 15층 규모 정도였다고 하시며 당신은 어떤 건물을 지을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00년은 내다봐야 하나 제 능력이 부족해서 50년은 내다 볼 수 있는 건물을 짓겠다고 대답했죠.
그리고 큰 스님이 특별히 요구한 것은 축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1000여명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000여명이 축전을 하고 잠시 들렀다가는 15층짜리 거대한 전시관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들어 70여평의 조그만 전시관과 전시를 보고 묵어갈 수 있는 숙소 등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김석환 : 만해 기념관을 찾아와서,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벗하며 만해의 업적을 기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이나 반대로 국가 지원이 전제 되다보니 승려로서의 만해의 일생처럼 고생스런 느낌보단 화려한 건물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개천 : 만해 스님이 궁박한 것을 강조하는 거보다 그런 것조차 사라지게 하는 것이 더 만해스님의 정신에 합당하다 생각했습니다. 관람객이 편안하게 들렸다 갈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이 시대에도 맞는거 같고요. 제가 말한 이 시대는 자본적인게 아니고 풍요로움입니다. 풍요로움이 클수록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어 대중하고 더 친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불편한 것을 감내해가며 무언가를 알게 한다고 해서 알아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사람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줘서 더 인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김석환 : 아무리 명망이 높다 해도 한 인물에 의해 파생되는 시설이 너무 많아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축 자체의 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도 자연을 밀쳐내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특히 정신성을 지향하는 건축에서 온당한 일일까 의문이 듭니다. 만약 일반인이 만해스님과 관련된 건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다 생각했을 때 자연 지역에 왜 이렇게 큰 건물이 들어서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개천 : 그 점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자연을 그대로 보존 하는 것만이 꼭 자연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고자께서 말씀하시길 자연의 인문적 세계를 보태서 자연을 더 풍부하게 하는게 군자의 도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해마을이 들어서서 그 뜻이나 여러 가지가 오히려 그 지역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역시 자연을 더 풍부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여러 동으로 나눈 이유도 가급적이면 드러나지 않게 하려 했고 실제로 건물에 들어가 보면 건물이 좀 없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인공물이 자연의 수준을 함께한다면 자연을 풍부하게 하는데 문제가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이 듭니다. 또 건축가들은 그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석환 : 설계하실 때, 만해마을이 백담사에 관련된 시설물이기 때문에 사찰 건축으로 규정하고 작업하셨는지, 아니면 자유롭게 선생님의 건축관이 반영된건지 묻고 싶습니다.

김개천 : 저는 사실 만해마을이 특별히 사찰이다, 기념관이다. 콘도미니엄이다, 그렇게 규정짓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런 식의 서고 방식 자체가 기존의 규정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찰하면 입구부터 경건해야 되고 종교적인 장소라 생각하고, 기념관이라 생각하면 기념관처럼 느껴지고, 콘도 역시 마찬가지 관점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을 하나로 아우러 통합적인 새로운 형식의 기념관, 혹은 새로운 형태의 사찰, 전반적으로 볼 때 기념관인데 기존에 존재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그런 것들, 그래서 특별히 지금의 말로 이걸 뭐라 규정 짓기가 힘든 오히려 그런 건물을 생각했습니다.

김석환 : 선생님에 대한 건축적 관심은, 몇 해전 협회상을 수상하신 정토사 법당에서 보여주신, 사찰 건축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갖고 계신 건축적 특징처럼 인상지워진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곳 만해 마을에 대한 관심도 기본적으로 같은 인식 선상에서, 그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서원보전에서는 정토사에서 한 작업과 연관해서 또 다른 시도가 있었습니까?

김개천 : 사실은 정토사에 연장선상에 있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다보니까 좀 달라지는 것도 있고 사실은 30대부터 지금까지 선이라는 것에 대해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명묵’(明黙)의 공간이라는 말로 제 작업을 설명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만해사를 통해 실현하려 했습니다.
어떤 공간이 가장 만해스님을 들어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설계 전에 해봤는데요, 제 생각에는 우주와 같아서 모든 것을 다 포섭할 수 있고 그 포섭한 것을 각자 또는 모든 것을 균등하게 나누어서 그 것들이 빛을 발하게 하고 또 각자의 부분들은 빛을 타고 사라진다고 그럴까요?
그렇게 사라져서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공간 뭐 그런 공간이면 만해 스님을 표현하는데 무리가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만해마을이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설계를 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저는 작가의 철학이 건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것들이 내제 되어 있는 힘으로 즉, 앞에서 말한 빛을 타고 사라진다는 의미처럼 그렇게 사라지는 형식으로 있는 것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석환 : 만해 마을을 직접 방문해보고 정토사 법당과 같은 성격의 건물은 서원보전 한 동이고, 나머지는 각 동마다 성격이 다른 건물로 지어져 있어, 앞에 말한 그런 관점으로만 만해 마을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리 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동안 작품을 발표하면서 쓰신 글이나, 지어진 건물의 이미지에서 선생님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점을 여기서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설계하신 정토사에서는, 전통 건축과 구조가 다르면서도 철근 콘크리트조로 된 구조체나 창호의 문살 등에서 전통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목재 가구식 구조의 속성이 느껴지면서 좀더 효울적이고 경쾌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만해 마을은 면을 구성하는 문살이나 창호 그런것들이 좀더 기벼워져서 그것이 주는 장점도 있지만 아쉬움도 동시에 지니게 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개천 : 사실 저는 전통 건축의 구조라든가, 가구식 형태라던가 하는 그런 것들에 솔직히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전통 건축에서 사상적인 것들을 배우고 싶고 또 왜 이런 조형을 했는지 근본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앞서 말한 그런 것들에 왜 관심이 없는가 하면 저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형태가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드로라는 예술가가 엄폐를 삼갈지 모르는 인식은 진리를 보유하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많은 공감을 합니다.
, 형식이나 형식에 대해서 엄폐하는 방식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창살 같은 경우에도 창살이 든든한가? 든든하지 않은가? 혹은 비례가 없다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요.
단지 만해사는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까지 공간이 분명히 존재하는데요, 또한 공간이 사라지는 것까지 느끼게 합니다. 분명히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형식도 함께 가진다는 거죠. 그런 것들이 저의 관심분야입니다.
또 재료도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콘크리트의 물성이라든가 또 재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재료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 건축을 보면 사실 디테일이 없습니다. 디테일로 섬세하다든가 혹은 트기를 얼마나 할까 라든가에 대해 고민을 한 흔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는 제 건축의 관심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김석환 : 이 작품에서 또 다른 관심거리가 되는 것이 제목에 관련된 것 같습니다. 작품 제목에 마을이 들어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개천 : 큰 스님(오현)과 친분이 두터우신 고은 선생님이 마을이란 이름을 꼭 써 달라고 하셔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김석환 : 만해마을이 이루어져 있는 구성이 주차장에서부터 진입하는 가운데 축을 통해 좌,우로 배열되어 있고 과정과 개념이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그런 전체 구성에 대해 선생님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김개천 : 사실 앞에 말한 것처럼 만해마을엔 마을이 없다는 것처럼 처음 들어가면 빈 길만 있습니다. 빈길 끝에는 멀리 산만 보이는게 첫 번째 표정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그 앞에 다른 것을 짓고 있어 표정이 많이 변했을 것입니다.
보통 종교적인 공간들이 어떤 목적점을 향해 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만해 마을의 빈 길은 그런 지향점이 없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빈 직선만 있는 것입니다. 사찰 건축에 전통 양식이 많이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저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형식으로 전통에서 느끼던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즉 존재하지 않는 형식으로 예전에 느끼던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그런 것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직선의 한 획으로 모든 것을 담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석환 : 길에 의해 마스터프랜의 경직성이 작용할 염려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신 취지는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도식성에 의한 경직됨으로 느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개천 :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고 아늑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직선이 가지는 정직함이라고 할까요. “꼬르뷔제가 말년에 바다와 같은 굽힐 수 없는 직선을 가지고 싶다
고 했는데 저는 그 직선이 사실은 곡직이라 생각합니다. 곡선도 가지고 또 직선이 가지는 힘, 경직함 이 모든 일체를 갖고 싶었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옛날 선비들이 사(), ()라 해서 사라고 하면 역사가 가지는 길고 깊은 힘과, 야 라고 해서 여가 가지는 거칠고, 분방하고, 직선적이고, 강한 그런 힘을 가져야 바른 모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것들을 동시에 짓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김석환 : 선생님께서는 정토사 법당과 만해 마을로 두 번에 걸친 협회상 수상을 통해 역량 있는 건축가로 자리매김 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앞으로 선생님이 하시는 작품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느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바쁘실텐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개천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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