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일본 건축기행(데시마, 나오시마, 아와지시마)
제 1일 12월8일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날씨가 맑고 시리었다. 공항으로 향하며 이른 시각에 모임 장소로 나가는 것이 큰 숙제처럼 여겨졌다. 다행히 예정대로 8시 5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옆 좌석에 앉은 분은 일본에 배를 고치러간다고 했다.
비행기가 서울 상공을 지나는 동안 서울이 내려다 보였다. 그동안 북한산을 계속해서 올라 그려온 터라 서울 입지의 전체 윤곽을 반가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북한산 및 도봉산 산세와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 수락산과 불암산 등이 모두 내려다 보였다. 그 다음 점차 양수리, 춘천, 설악산 부근 산세가 차례로 바라보이다 동해 해안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흰 뭉게구름 위를 지나 일본 해안에 들어 선 잠시 후 곧 착륙할 것이란 기내 방송이 나왔다. 점차 지상으로 내려가며 바라보이는 주변은 일본 대도시의 번화한 모습과 달리 소박한 시골 도시 풍경이었다.
10시, 비행기가 예정 시간대로 오카야마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수속을 하고 밖으로 나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탑승하자 현지 가이드가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했다. 오카야마에서는 대도시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던 일본 시골 사람들의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새벽부터 바삐 움직이느라 미처 인사 나눌 시간이 없었던 일행들도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앞으로 나와 짤막하게 자기 인사를 했다. 현지 날씨는 흐려 있었다.
출국수속을 하고 시내를 통과한 버스가 야트막한 산자락을 넘어가는 동안 바닷가 마을 풍경이 보였다. 작년에 국내서 상영한 ‘바닷마을다이어리’라는 영화가 떠올려졌다. 그 배경중 한 곳이 바로 이 곳 오카야마였다. 잠시 후 바라보이던 그 마을 우노항의 다마노시 식당 앞에 도착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마을 길 옆으로 수로가 흐르고 그 주변에 낮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뒤쪽의 부둣가에는 큰 창고 건물과 크레인이 솟아 보였다. 수더분한 가로 분위기와 겨울의 흐린 날씨 탓인지 일본에서의 첫 인상이 조금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일식으로 식사를 한 다음 부두로 가서 배를 탔다. 40분 동안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다행히 날씨기 맑아지고 있었다. 일행이 탄 배가 테시마 부두에 정착했다. 일본 전통 양식의 가옥들이 보이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주변에 마을 사람들의 고깃배가 정박해 있고 정류소 옆에는 대나무로 지은 건물이 보였다. 정류소로 가서 막 출발하려던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경사진 해안가 도로로 올라가면서 해안 경관이 펼쳐 보였다. 짚푸른 바다 물살이 맑아 보였다. 일본의 내해는 일본 고대문화와 연관이 있다. 일본에서 최초의 고대국가 체제로 나아간 야마토 시대 이후 나라시대가 시작된 곳도 내해에 접한 오사카 인근이다.
○ 데시마미술관
버스에 내려 뒤돌아 나오다 보니 바다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였다. 그 풍광만 해도 좋은 구경거리 같았다. 내리막길로 해안가로 내려가니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데시마 미술관의 돔형 지붕이 보였다. 미술관 입구를 찾아 우측으로 들어가 매표소로 들어섰다. 거기서 표를 산 다음 한 바퀴 빙 돌아 입구 앞에 이르렀다. 작은 산봉우리를 돌아 들어서게 하는 어프로치가 의도되어 있었다. 거기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신발을 벗는 행위가 엄숙함과 경건함을 불러일으켰다.
내부는 스팬이 너른 공간인데도 개구부 단부에서 보이는 스라브 두께는 그리 두터워 보이지 않았다. 기둥이 없어 구조상으로 더 두꺼워야 할 것 같은데 아마도 에지 부분만 얇게 보이게 했을 것 같았다. 한 곳에 멈춰 서 있으니 고요하고 명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천정에는 두 곳의 둥근 개구부가 그냥 휑하게 뚫려 있어서 외부의 하늘, 바람, 나무의 표정과 바람소리가 직접 전해지며, 내부로 들어와 스산하게 나부끼는 낙엽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외부자연과 다른 내부로 투영된 자연의 감각, 개구부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그로 인해 생긴 그림자의 밝고 어두움의 대비, 바닥에 비친 빛의 반사와 확산을 통한 다채로운 밝기의 변화, 그리고 폭과 깊이 공간 및 개구부의 위치와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감의 변화와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여기서의 건축적 의도는 자연과 사물의 원초적 감각이 느껴지게 하려는 것 같았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다시 개구부를 통해 외부와 만나게 하는 장치가 되는 샘이었다. 계절 따라 바깥 풍경도 변화되어 보이고 느낌도 달라질 것 같았다.
바닥 중간에서는 탁구공만한 크기의 플라스틱 구(求)에서 물이 조금씩 솟아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물방울이 빗방울이 연잎처럼 굴러다니게 한 바닥의 처리에 의해 자유롭게 번지면서 미묘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이 내부의 공간 감각과 어우러지며 특별한 분위기를 띠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미술 작품이거나 그 안의 전시 개념과 일치된 분위기를 낳게 하는 장치 같았다.
미술관을 나와 다시 배가 닿은 마을로 걸어 내려왔다. 아까보다 그 지역 풍경이 더 찬찬히 눈에 들어왔다. 배에서 어부들이 그물 손질을 하고 있었다. 마을 안쪽의 전통 가옥들도 보였다. 소박한 어촌 마을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다시 부두에서 배를 타고 점심 식사를 했던 오카야마로 출발했다. 갑판에 올라서 돌아보니 태양빛과 푸른 물결, 그리고 방금 들렀던 섬의 선명한 단풍 빛깔이 어우러져 보였다. 갑판에서 수채화를 그리다 보니 거센 바닷바람이 불어 파도 물방울이 그림에 튀었다.
40분후 출발했던 우노항 선착장에 닿아 버스를 타고 구라시키로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 농촌 풍경이 보였다. 앞쪽의 너른 토지에서 추수가 끝나고 텅 빈 벌판에 적막함과 스잔함이 베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옆으로 늘어서 있는 낮은 가옥들에서 토지에 의존해 살아온 삶의 체취가 느껴졌다.
김남훈 가이드가 이동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일본의 문화에 대한 예기를 했다. 대체로 외국 관광객들이 일본을 다시 찾는 이유가 친절이라고 말하는데, 그 것이 ‘오아시스’ 운동 덕분이라고 했다. 즉 오아이요 고자이마스/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시쓰레이 시마츠/ 스미마생의 앞 글자를 딴 말이었다. 일본사람들의 친절한 매너가 그냥 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착이 예정시간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단체 일정을 마치고 하루를 개인적으로 더 머물기로 사전에 예기가 되어 있었다. 틈을 내 앞쪽에 앉은 정대표에게 차편 등 챙겨야 할 것들을 물어보았다.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이동이 지체되고 시내로 접어들면서 심한 교통 체증을 겪었다. 도착 장소는 멀지 않은데 차가 막혀서 자꾸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 에도시대 주택 가로
5시 구라시키에 도착하여 200년전 에도 시대 형성된 주택가를 돌아보았다. 특유의 운하 물길이 있고 그 옆 가로변에 건물들이 연이서 서 있었다. 수로 옆 곳곳에 고목과 어우러져 옛 시대 정취가 베어났다. 수로에 맵시 있게 걸려 있는 돌다리 앞에는 일본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고전 양식의 오하라 미술관이 불빛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각자 구경을 하다 수로에 맵시 있게 걸려 있는 그 돌다리 앞에 5시 45분까지 다시 모여서 차로 이동하자고 했다.
각자 흩어져 시계방향으로 돌며 가로를 살펴보았다. 대문이 닫힌 사찰을 지나 술집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서 사케 가게 내부도 구경했다. 계속해 가로를 돌며 살펴본 다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스케치 하고 아까 들어온 길로 가서 주차장에 서 있던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이철희 조각가가 아들과 함께 길을 헤메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일행이 걱정하는 사이 그들이 돌아와 버스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늦은 시각이라 로비에 짐을 두고 지하층 식당으로 가서 저녁 식사 후 방으로 올라갔다.
제 2일 12월9일(토)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시내 불빛이 별빛처럼 보였다. 그리고 날이 밝으며 점차 사물이 뚜렷해 보여 창가에 서서 시내 전경 스케치를 하다 1층으로 내려가 급히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 8시 10분 호텔을 출발했다.
시내를 통과해 시 외곽으로 나가는 동안 어제 지났던 가로변 풍경이 익숙히 다가왔다. 9시, 어제 데시마로 갈 때 들렀던 항구에 도착했다. 항구에서 나오시마 섬까지는 배로 20분 거리라고 했다. 일행은 버스 안에서 배 운항 시간을 기다리다 잠시 후 배가 들어와 승선을 했다. 배가 출발하고 떠나온 항구가 점차 멀어지는 사이 갑판에 올라 수채화를 그렸다.
9시 36분 나오시마 섬에 도착했다. 부두 한편에 안내책자에 있는 일본 나가노 출신 야요이 쿠시마의 설치 작품 빨강색 호박이 보여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나오시마에 설치된 야요이의 작품들은 나오시마의 상징적 이미지로 자리매김 되었다. 현재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나오시마 섬의 탄생에는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의 의지가 절대적이었다. 그는 원래 서점을 운영했는데 나중에 후쿠다케 서점에서 베네세 그룹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나오시마 섬의 절반 정도를 사들여 황폐했던 곳을 문화예술섬으로 탈바꿈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오시마에서의 꿈을 펼칠 동반자로 안도 다다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와 호흡을 맞췄다. 이곳에는 섬 특유의 풍경 속에 건축 작품과 세계적인 미술 작가들의 미술품들이 결합되어 있다. 초기에 다른 사람들이 무모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후쿠다케 회장은 반드시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할 것이라고 했다 하는데 지금은 그 말대로 된 것 같았다.
도착한 부두에서 버스를 타고 지중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야산을 넘어가 해안을 따라 가는 동안 바다 풍광이 보였다. 가끔 점점이 노란색 배가 보였다. 가이드가 그것도 지중미술관과 연관된 작품이라고 했다.
○ 지중미술관
10시 8분 지중미술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먼저 주차장 앞쪽에 있는 매표소에 들러 표를 산 다음 순서를 기다려 바깥으로 나와 도로가의 수련 연못을 지나 미술관 정문으로 들어섰다. 이 건물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전시실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계곡처럼 놓인 수련 연못은 미술관 안에 전시된 모네의 수련 작품과 연관해 조성한 것인데, 그로 인해 내부로 들어서는 긴 동선의 경로로서 인식이 형성되고 건축 개념이 외부에서부터 시작되게 된다.
대문과 그로부터의 오르막 경사길, 그리고 건물 내부 경계에 설치된 통로 진입과정과 길의 굴절, 어두운 통로를 지나 오르는 계단 부위의 트임, 땅 속의 어두움과 하늘로 열린 개구부의 개방감이 교차한다. 건물 안에서도 밝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는 경로, 상부가 열린 마당, 빛의 극적인 빛의 차단과 유입에 의해 밝고 어둠의 대비가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에 지중 미술관이라는 ‘땅속’ 지하의 관념성이 인식에 극적인 작용을 더한다. 그냥 평범한 지하실 구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면밀히 계산된 전시 작품과의 조우 방식과 막힌 지하공간에 빛의 유입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특별한 건축적 인상을 유발했다.
○ 이우환미술관
지중미술관을 나와 11시 38분 이우환미술관에 도착했다. 먼저 온 일행들이 안쪽에 보였다. 높은 직벽 우측에 설치된 계단으로 내려가다 보니 건물 전면 광장의 설치 작품이 놓여 있었다. 또 해안가 쪽의 잔디 위에도 철판을 세워둔 작품과 바위에 휘어진 철 기둥이 올려진 작품이 놓여 있었다. 전면 좌측 끝에서 시작되는 입구에서 꺾인 통로를 왕복해 지나며 건물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 입구에서 표를 사고 다시 중정으로 나갔다가 그 끝 반대 측 모서리 지점에서 비로소 전시실 내부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입구로부터 긴 경로의 설정과 하늘로의 트임 등이 앞서 본 지중미술관과 비슷한 개념으로 다가왔다. 동굴처럼 갇힌 공간을 기조로 군데군데 열린 공간의 대비 효과와 과정을 통한 작품과의 만남을 극적으로 느껴지게 하려 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긴 통로를 지나 바위, 철판 위에 놓인 바위,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 작품에 따라 특색 있게 꾸며진 실 안에서 그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 베네세하우스
이우환미술관을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가까이 있는 해안가에서 내려 걸어서 베네세하우스로 이동했다. 그 건물의 진입이나 공간 구성도 골목길 같은 공간과 오픈 스페이스의 연결, 깍인 경로, 밝고 어두운 공간의 대비, 닫힌 공간으로부터의 트임 등이 앞서 본 지중 미술관이나 이우환 미술관과 비슷했다.
식당 안에서도 큰 창 너머로 바다가 트여 보였다. 일찍 먹고 마당 언저리로 나가 수채화를 그렸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해안에 대기 중인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도 해안 풍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들어선 도로를 되돌아 나오다 잠시 바닷가에 설치된 노란 호박을 보고 산을 넘어 이에 프로젝트 장소에 도착했다.
○ 이에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쇠락해가던 기존 마을을 재생한 사업으로 7년 6개월 동안 조성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선 다음 먼저 앞마당에 자갈이 깔려 있는 카도야에 들어섰다. 그 곳을 지키는 아가씨에게 표를 보여주고 내부로 들어가니 깜깜한 내부 공간 안에 물이 채워진 수면 위로 희미한 불빛에 숫자가 비춰 보였다. 그 곳을 나와 산등성이를 올라가 고오진지에 조성된 작품을 보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 한 집을 더 들른 다음 미나미타레로 가서 깜깜한 내부로 들어가 제임스 터렐의 빛을 주제로 한 작품을 감상했다. 그리고 부두로 돌아와 인근의 아이러뷰 목욕탕을 보고 승선했다.
5시, 배가 나오시마 항구를 출발했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둘러본 해안에 전등 불빛이 보였다. 아까 돌아본 작품들도 조명이 되어 눈에 띠었다. 밖이 어두워지자 여행객들이 안으로 들어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거나 TV를 보기도 했다.
5시 55분 배가 다카마스 항구에 도착해 저녘 식사를 예약한 다카마스 가로에 내렸다. 정대표가 그 지역이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시행된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 저녘 식사 예약 시간까지 시간 여유가 많이 남아 있어서 다카마스 거리를 구경을 하고 7시 30분에 식당으로 모이기로 했다. 지붕이 긴 궁륭터널처럼 되어 있는 상가 가로를 이리저리 걷다 미쓰비시 백화점에서 만년필 잉크를 구입한 후 상가 스케치를 하고 시간에 맞춰 식당에 들어섰다. 메뉴는 회정식에 주류는 무제한이라고 했다. 이철희 조각가가 어제 늦어 미안하다며 주류는 무제한이니 일행에게 회를 사겠다고 했다.
9시 30분 식당을 나왔다. 입구로 나온 회원들의 표정이 여유로워 보였다. 버스가 기다리는 도로변 풍경도 서울의 가로처럼 일상의 도시 풍경 같아 보였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해 온천욕을 한 후 숙면을 취했다.
제 3일 12월10일(일)
아침 일찍 기상해 창을 여니 주변의 농촌 풍경이 보였다. 추수를 마친 텅 빈 들녘 사이에 농가가 놓여 적막한 느낌을 띠고 있었다. 온천욕을 한 후 밖으로 나가 호텔 주변 농가 스케치를 한 후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밖에 서서 추위를 탄 탓에 오한이 느껴져 다시 온천욕을 하고 버스에 탔다. 9시 숙소를 출발했다. 일정이 3일째 접어들었다. 아침 한기 때문인지 컨디션이 저하되었다.
가이드가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앞쪽 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 일본에 대해 짧게 설명을 했다. 일본 인구는 1억 3천만이며 1도(동경) 1도(홋카이도) 2부 43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가 총 26명인데 기초과학 분야가 22명이며 일본 3대 기술로는 내진설계, 해저터널, 제약 기술을 꼽는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집을 살 때 내진설계를 먼저 물어본다고 한다. 9시 39분 시코쿠무라(민속마을)에 도착했다.
○ 시코쿠무라
들어서는 입구에 신사가 보였다. 우리의 민속촌처럼 1976년에 조성한 곳인데, 일본의 농가를 재현한 200~300년 된 가옥들이라고 했다. 그 집들에서 그야 말로 일본의 농경문화가 풍겨났다. 가옥구조를 그대로 지니고 있고 농기구나 살림가구 등이 함께 놓여 있어 실제 생활상을 느낄 수 있었다. 외양으로 보면 세계문화유산인 시라가와 마을의 집들과 인상이 비슷해서 훨씬 더 오래된 건물들 같았다. 마을 내 건물 가운데는 정자처럼 자그마한 전통 다실 건물도 있었다. 그 마을 안에 안도가 설계한 작은 미술관은 카토상의 소장품 전시관으로 지어졌는데 내부 공간에 밝고 어두운 빛의 변화와 긴 경로가 설정되어 있고 옥외에 너른 계단식 낙수대를 조성해 놓았다. 잠시 후 우동전문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바다 물살 소용돌이로 유명한 아와지시마 섬 부근의 하리마 여울을 본 다음 물의 절로 향했다.
잠시 후 식당 앞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등 장식이 걸린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에서 건물이 둘러친 마당에 정원이 정성스레 가꾸어져 있었다. 가이드가 그 곳이 꽤 유명한 우동집이라고 했다. 들어서는 좌측 실은 일본 전통 양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우측에는 그냥 홀처럼 되어 있었다. 우측 실로 들어서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밖으로 일찍 나와 스케치를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물의 절을 가다 아와지시마 섬 부근의 하리마 여울을 보았다. 다리가 지나는 부근의 그 여울은 바다 물살 소용돌이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 바다가 세토 내해로, 내해 특성상 파고가 낮고 기후도 안정적인데 조선 통신사가 왕래한 경로이기도 하다.
○ 물의 절
하리마 여울 위로 지나는 긴 다리와 해안 풍광이 펼쳐 보이는 육로를 지나 2시 30분 물의 절이 있는 본족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안도가 설계한 물밑 사찰로 널리 알려진 건축물이다. 건물 위에 수반 같은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서 물 밑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극적인 공간감각을 유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지붕 연못은 깊이가 깊지 않고 그 하부 공간은 일반적인 지하 공간과 같아서 일종의 착시 효과를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 아래쪽에서 보면 지상 건물처럼 벽면이 노출되어 모서리 부분에 낸 창에서 지하 법당으로 빛이 유입되는데 그 안쪽에 빨강색 칠이 되어 있어 붉게 햇살이 비춘다. 그런데 지상부의 완결적 도형과 달리 지하층의 법당은 중앙의 계단 좌측 한 켠에 치우쳐 있어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여기서 더 인상적인 것은 진입하면서 노출콘크리트 물성을 살린 거대한 구조물이 인공 연못과 함께 바라보이는 인공 풍경이었다.
○ 류메부타이
마지막 장소인 류메부타이(꿈의 무대)로 이동했다. 날씨가 점차 흐려져 3시 18분 류메부타이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곳은 국제회의장, 호텔, 정원 등으로 구성된 거대한 규모의 건물이다. 지금의 시설이 들어서기 전 이 곳은 원래 매립지였고 한그루 나무도 없이 폐허화된 곳이었는데 지금은 주변에도 관광 숙박 시설 등이 많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그 곳의 백단원은 외부 경사지에 콘크리트 박스 형태의 백 개의 화단을 설치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한신대지진 희생자들의 추모를 위해 조성한 것이다.
여기서도 전체적인 공간구성에서 안도 건축 특유의 감각이 드러났다. 호텔에서 백단원으로 이동하는 통로 벽에 전시된 안도의 스케치에 설계 초기의 생각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건축적 밀도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호텔의 일반적인 마감 재료에서 특별성이 사리지게 되었고 노출콘크리트와 흰 벽, 화강석으로 마감된 바닥 등의 재료의 조합이 주는 공간감이 밋밋하게 느껴졌다. 백단원 주변의 옥외 구조물들은 과도하고 거추장스런 느낌도 들었다. 게다가 시설의 상업적 성격, 재료의 혼재 등으로 인해 특유의 엄정함과 완결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곳을 끝으로 모든 공식 답사 일정을 마쳤다. 데시마, 나오시마, 아와지시마 프로젝트는 모두 폐허화 되어 있었던 곳을 건축의 개입으로 탈바꿈시켜 건설 단계에서부터 의욕적으로 관광지화 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건축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원래 마지막 출발지에서 함께 모여 작별 인사를 드리기로 했었는데 마지막 일정이 조금 늦어진 관계로 개별적으로 인사를 드린 다음 고배로 향했다.
신고배역까지 요금은 930엔이고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다음 버스 정류장 주변에도 숙박시설이 몇 채 보였다. 조금 가다보니 바깥이 금세 어두워지고 있었다. 퇴근 무렵이라 고배에 들어서면서 차가 많이 막혔다. 5시 10분 신고배역에 도착해 신간선으로 갈아타고 교토로 향했다. 교토까지 두전거장인데 시간은 27분 걸린다고 했다.
6시 19분 교토 역에 도착해 전면 광장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때문에 주변 가로가 늦은 밤처럼 더 깜깜했다. 도로 건너에 바우처 사진에서 본 듯한 건물이 있어 그 앞으로 가보니 예약한 곳이 아니었다. 그 호텔 프론트에서 지도를 받아 위치를 확인하고 예약한 호텔을 찾아가 바로 취침했다.
제 3일 12월11일(월)
새벽 2시에 깨었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일찍 나서려 해도 호텔 조식이 7시라 그 시간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아침을 먹고 교토역에서 신간센 탑승권을 구매했다. 그리고 8시 5분 료안지행 50번 버스를 탓다. 출근 시간이라 시내 이동이 지연되었다. 9시 10분 료안지 인근의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분주히 학교 안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거기서 료안지 가는 길을 물어보고 빠른 걸음으로 찾아갔다.
9시 17분 료안지에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서니 먼저 들어온 학생들에게 인솔하는 교사가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의미 있는 곳을 처음 방문해서인지 설레임이 일었지만 도쿄로 갈 열차 시간이 촉박해질 듯하여 마음이 급했다. 순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 석정에 도착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서 들어가니 좌측 모서리측이 트인 너머에 석정이 보였다. 익히 사진으로 보아 알고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이 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무로마치시대 고산수 정원이다. 거기서 석정과 건물 마루와의 관계, 그리고 막히고 트인 공간의 전개 등을 통해 극적으로 마주하게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제까지 돌아본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 큰 영향이 느껴졌다. 모노회화 또한 여기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였다.
료안지를 나와 바로 교토 역으로 가려다 마음을 바꿔 금각사로 향했다. 오랜만에 교토에 왔는데 28젼전 왔던 그 곳을 지척에 두고 그냥 가기가 아쉬웠다. 그리고 거기서 료안지와 정원 양식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1.5km정도를 걸어 금각사에 도착해 표를 사고 바로 금색으로 도색한 건물을 찾아갔다. 용안사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북적거렸다. 무로마치시대 대표적인 정토 정원으로서, 불교의 정토사상을 반영해 조성한 양식이다. 너른 호수와 뒤로 보이는 산세 마치 자연 풍경처럼 보인다. 호수 건너에서 스케치를 하다 급히 교토역으로 향했다.
호텔에 돌아와 짐을 챙긴 후 12시 6분 동경행 신간선에 탑승했다. 옆 승객이 친절하게 짐 올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우에노 공원을 들러 공항으로 가기까지 시간이 촉박할 듯하여 도시락을 사서 차 안에서 먹었다. 오후 2시 23분 동경에 도착했다. 대도시 역답게 매우 북적거렸다. 두리번 거리며 동경 지하철로 환승하여 2시 38분 우에노공원역에 도착했다.
역을 나가 나가 바로 미술관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었다. 월요일은 어느 미술관이나 휴관인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일정 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그래도 밖에서 보는 것만도 만족스러웠다. 네 번째 방문이어서 내부 구조를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울타리를 따라 둘러보며 정면과 측면 스케치를 했다.
서양 미술관의 건립은 태평양 전쟁의 종전 후 연합국이었던 프랑스에서, 그 곳에 체류하며 많은 그림을 수집한 일본 재벌이 사 모은 인상파 회화 작품들 반환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는 반환을 거부하다 제대로 소장할 수 있는 미술관을 세우는 조건을 달아 반환하기로 했고 그 설계를 르 꼬르뷔제에게 맡겼다.
이 미술관은 르 꼬르뷔제의 건축 감각이 잘 표출되어 있다. 개념은 성장하는 미술관의 모델이다. 그는 그 개념을 되풀이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인도에서 실현되었다. 이 건물을 짓는데는 르 꼬르뷔제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제자들의 역할도 컸다. 스승의 스케치를 받아 재료와 디테일 등, 가다듬기를 거듭하여 꼬르뷔제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었다.
외관은 단순한 직사각형 매스에서 1층 부분을 피로티에 의해 들춰진 느낌이 들게 하면서 피로티의 보이드와 벽체의 솔리드한 요소가 조화를 갖게 했다. 그리고 상부 벽은 콩자갈을 심은 테라죠판을 붙여 자연스런 물성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내부에는 순환로를 따라 오르게 되어 있으며 전시실의 조명은 천창을 이용하였다.
이 건물은 기하학적 구성과 전면 계단 등 다양한 요소의 조합, 명쾌한 질서와 부분적 변화 조화되어 있다. 그리고 피라미드 형태로 솟아난 지붕에서 빛이 유입되도록 한 중정 부분이 특히 인상적인데 전체적으로 그의 건축에서만 느껴지는 시적 울림이 있다. 이 건물은 일본 건축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았다.
4시 30분 급히 우에노역으로 되돌아가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다. 거기서 전철을 타고 마스역에서 환승한 다음 하네다 공항행 모로레일로 환승하여 5시 9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항공권을 받아 짐을 부친 다음 쎄븐 일레븐에서 도시락으로 저녘 식사를 한 후 탑승수속을 하고 들어가 114번 게이트에서 탑승을 했다. 그리고 8시 5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10시 3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일본 건축답사는 바쁘게 움직인 여행이었지만 일본 현대건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번에 처음으로 들른 료안지 석정을 답사하면서 일본 현대 건축과 깊은 연관성을 느끼게 되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산수정원 양식으로 꼽히는 거기에서 현대 일본 현대 회화의 모노파 미술이나 인도 등의 현대 일본건축에 나타난 물성과 자연의 추상적 축약의 감각 등의 연관성이 느껴졌다.
자연 기후의 긴밀한 대응과 자연 현상과의 관계, 친환경성, 그리고 물성의 표출 등이 중시된 세계 건축의 흐름에서 일본 전통건축에 함양된 자연의 관념성과 그 축적된 자산으로부터 현대 일본 건축의 주요 개념이 배양되어지는 듯 여겨졌다. 그리고 일본의 현대 건축을 이해하는데 있어 그 나라 전통 건축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71211 건축가 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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